가을 산길을 걷다 보면 밤나무 아래 저절로 벌어진 밤송이가 떨어져 있다. 누가 따지 않아도, 누가 힘주어 벌리지 않아도 스스로 벌어져 알밤을 드러낸 그 모습을 우리 조상들은 아람이라 불렀다. 탐스럽게 익어 저절로 벌어진 열매. 억지로 익힌 것이 아니라, 제 속도로 다 익어서 스스로 세상에 몸을 내어준 열매다.
억지로는 아람이 되지 않는다
풋밤을 억지로 까면 속살이 하얗고 떫다. 아무리 겉모습이 밤 같아도, 아직 아람이 아니다. 아람은 오직 시간이 만든다. 여름내 뙤약볕을 견디고, 가을바람을 맞고, 서리를 몇 번 맞아야 비로소 밤송이는 스스로 벌어진다. 그 누구도 밤송이를 서둘러 벌릴 수 없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종종 아람이 되기 전에 무언가를 세상에 내어놓으려 한다. 준비가 덜 된 마음을 고백하고, 여물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아직 떫은 생각을 남에게 확신처럼 말한다. 그럴 때 우리는 풋밤을 억지로 까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셈이다. 겉모습은 그럴듯해도 속은 아직 떫다.
저절로 벌어지는 순간
아람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저절로'라는 말에 있다. 누가 손대지 않아도, 억지로 힘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벌어진다. 이것은 단순한 성숙이 아니라 넉넉함이다. 더 이상 움켜쥐지 않아도 되는 상태,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되는 상태. 다 익은 열매는 자기 속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활짝 열어 보인다.
사람도 그렇다. 진짜 성숙한 사람은 애써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다져온 마음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서도 그 사람이 얼마나 여물었는지가 보인다. 그것이 아람의 마음이다.
인생의 아람이 익어가는 시기
오십, 예순은 어쩌면 인생에서 아람이 맺히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실수와 방황, 견뎌온 세월과 서리 같은 시련들 — 그 모든 것이 지금 우리 안에서 열매를 익히고 있다. 아직도 스스로를 풋밤처럼 여기며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견뎌온 시간만으로도, 이미 여물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절로 벌어지는 순간이 온다. 억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 애써 말하지 않아도 오랜 친구가 내 속을 알아주는 순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지나온 삶이 스스로 말해주는 순간.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아람이 벌어지는 때다.
오늘 나에게 건네는 질문
- 나는 지금 무언가를 풋밤처럼 억지로 세상에 내어놓으려 하고 있지는 않을까?
- 시간이 지나며 저절로 여문 것,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 지금 내 안에서 아직 익어가는 중인 것이 있다면, 그것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