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벗어나면 큰길이 아니라 작은 길이 하나 나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엔 좁고, 양옆으로는 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어 걷다 보면 옷깃에 이슬이 스몄다.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길을 우리 조상들은 소롯길이라 불렀다. 호젓하고 좁다란 길. 큰길이 데려다주지 못하는 곳으로, 그 길은 조용히 사람을 안내했다.
큰길이 아니어서 갈 수 있는 곳
소롯길은 지도에 잘 나오지 않는다. 넓지 않고, 곧지 않고, 때로는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걷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런 길이라야 닿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산속 옹달샘, 마을 뒤 오래된 서낭당, 어릴 적 뛰어놀던 개울가 — 큰길로는 절대 갈 수 없는 자리들을, 소롯길은 데려다준다.
넓은 길에는 넓은 길의 쓸모가 있다. 빠르고, 확실하고, 많은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다. 하지만 소롯길에는 그 나름의 쓸모가 있다. 혼자 걸을 수 있고, 걸음의 속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고, 무엇보다 그 길 위에서는 온전히 자기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호젓함이 주는 것
'호젓하다'는 말에는 쓸쓸함과 편안함이 같이 들어 있다. 사람이 없어 적적하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롯길이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외로움과 자유로움이 나란히 걷는 길.
우리는 살면서 늘 큰길만 걸으려 애쓴다. 남들이 다 가는 길, 검증된 길, 넓고 확실한 길. 그러나 정작 마음이 깊어지는 순간은 소롯길 위에서 찾아온다. 아무도 없는 골목을 혼자 걸을 때, 정해진 일정 없이 산책할 때, 사람들 틈을 벗어나 잠시 혼자가 될 때. 그 호젓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듣는다.
인생 후반부의 소롯길
젊은 시절에는 큰길을 걷느라 바빴다. 남들보다 앞서야 했고, 정해진 방향으로 빨리 가야 했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면 문득 깨닫는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큰길 위에 없었다는 것을. 자식과 나눈 짧은 대화, 배우자와 말없이 걸었던 저녁 산책, 혼자 앉아 지나온 삶을 돌아보던 시간 — 그것들은 모두 소롯길 위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제는 일부러라도 소롯길을 찾아 걸어도 좋을 때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길. 그 길 위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걸음이 느려도, 방향이 조금 어긋나도 상관없다. 오히려 그 느림과 호젓함이 지금 나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에게 건네는 질문
- 요즘 내 삶에서 '큰길'만 좇느라 놓치고 있는 '소롯길'은 없을까?
- 온전히 혼자, 호젓하게 걸었던 마지막 순간은 언제였을까?
-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나만의 소롯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