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잠 — 깨었다가 다시 든 잠

 

새벽 네 시, 잠에서 눈이 떠졌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눈이 떠졌고, 방 안은 아직 캄캄했고, 창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금 전과는 다른 결의 잠이 찾아왔다. 더 깊고, 더 부드럽고, 아침까지 이어지는 잠. 우리말에는 이 잠에 붙은 이름이 있다. 그루잠. 깨었다가 다시 든 잠을 이르는 말이다.



그루, 다시 시작하는 자리

'그루'라는 말은 본래 풀이나 나무를 벤 자리에 남은 밑동을 가리킨다. 벼를 베고 난 논에 다시 심는 벼를 '그루벼'라 하고, 한 해에 같은 땅에서 农작물을 두 번 거두는 일을 '그루갈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그루'는 끝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한 번 마쳤지만 아주 끝나지는 않은 것을 뜻하는 글자다.

그루잠도 마찬가지다. 잠이 한 번 끊어졌다고 해서 그 잠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깨어난 그 자리에서, 다시 잠은 자란다. 밑동만 남은 줄 알았던 자리에서 새순이 돋듯이, 끊어진 잠의 밑동에서 새로운 잠이 돋아나는 것이다.


끊어짐이 끝은 아니어서

살다 보면 이런 순간들을 자주 만난다. 하던 일이 갑자기 멈추는 순간. 이어오던 관계에 틈이 생기는 순간. 다 잡은 줄 알았던 마음이 새벽 네 시처럼 문득 깨어버리는 순간.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 끝났구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혹은 이미 늦었다고.

그러나 그루잠이라는 말은 다른 걸 알려준다. 끊어진 자리가 곧 끝은 아니라고. 잠이 깼다고 해서 잠자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으면, 그루벼가 자라듯 새로운 잠이 자란다. 다만 조금 다른 결로, 조금 다른 깊이로.


오십, 예순의 그루잠

이 나이가 되면 밤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한밤중에 깨는 일이 잦아지고,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건 잠이 나빠진 게 아니라, 삶이 그루잠의 시기로 접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한 번에 쭉 이어가던 시절을 지나,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결로 살아가는 시기.

일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다. 삼십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자녀를 다 키워 떠나보냈을 때, 오래 붙잡고 있던 어떤 역할을 내려놓았을 때 — 그 자리는 끝난 자리가 아니라 그루의 자리다. 밑동만 남은 것 같아도, 거기서 다시 무언가 돋아날 수 있다. 다만 조급하게 첫 잠처럼 굴지 않아도 된다. 눈을 감고, 기다리면 된다.


오늘 나에게 건네는 질문

  • 최근에 '이제 끝났다'고 여겼던 일 중에, 사실은 그루잠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을까?
  • 나는 끊어진 순간을 만났을 때 조급해하는 편인가, 아니면 다시 눈을 감고 기다릴 줄 아는 편인가?
  • 지금 내 삶에서 '그루'로 남아 있는 자리, 즉 밑동만 남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자리는 어디일까?

끊어진 잠도 잠이듯, 끊어진 삶의 결도 여전히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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