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할 줄 알았는데, 왜 자꾸 어긋날까

 김 권사님은 이사하는 딸을 위해 며칠을 꼬박 들여 오래된 자개장롱을 손질했습니다. "이건 네 결혼할 때 꼭 주려고 아껴둔 거야." 그런데 딸의 표정이 이상했습니다. 좁은 신혼집에 들일 자리도 없고, 요즘 취향과도 맞지 않는 가구였던 겁니다. 딸은 결국 웃으며 받아 갔지만, 몇 달 뒤 창고에 처박아둔 걸 알게 된 권사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랑해서 한 일인데, 왜 자꾸 마음이 어긋날까요. 자녀를 위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정작 자녀에게는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까워서 물려주는 마음

오래된 그릇, 앨범, 가구를 자녀에게 넘겨주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버리기 아까워서 너 줄게"라는 말 속엔 평생 쌓아온 시간과 애정이 담겨 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 자녀 세대는 짐을 줄이고 단순하게 사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에게는 유산이지만, 받는 자녀에게는 처치 곤란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걸 헤아려야 합니다.

다 키워봤다는 자신감

손주가 태어나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셋을 키워봤는데"라는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지만, 요즘 육아 방식은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좋은 뜻으로 건넨 조언이나 개입이, 자녀 부부에게는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도와주고 싶다면, 먼저 물어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걱정 끼치기 싫어서 숨기는 마음

몸이 편찮으실 때 "괜히 걱정시키기 싫어서" 혼자 병원을 다니고 자녀에게는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상태가 심각해진 뒤에야 소식을 접한 자녀는, 걱정보다 서운함과 죄책감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함께 대처할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가 남는 것이죠.

전통이라는 이름의 부담

명절이나 제사를 예전 방식 그대로 지키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이게 우리 집 전통이니까"라는 말에는 지켜온 세월의 무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맞벌이에 시간이 빠듯한 자녀 세대에게는 형식을 그대로 요구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형식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걸, 부모가 먼저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확인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모르는 자녀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연락은 사생활을 침해받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온도는 같아도, 표현하는 방식은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는 만큼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부모의 사랑이 참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랑의 표현 방식이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것인지는 가끔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세 가지

  1. 최근 자녀에게 베푼 호의 중, 물어보지 않고 내 판단으로 결정한 일이 있었나요?
  2.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 뒤에, 사실은 나의 불안이나 외로움이 숨어있지는 않았나요?
  3.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나의 방식이 아니라 자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꿔본다면,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마음에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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